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라이센스뉴스=구건서의 산중필담(49)|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무더운 어느 날 갑자기 소나기가 한줄기 쏟아진다. 산골에서 흔히 겪는 일이니 새롭지는 않다. 저 멀리 금당산과 거문산에서부터 새까맣게 몰려오는 비구름이 집까지 도착하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나기 덕분에 더위는 잠시 물러간 듯하다. 후덥지근한 여름에 내리는 소나기는 뜨거운 대지를 적시며 메마른 가슴에도 생명수로 작동한다. 나뭇잎을 때리는 우렁찬 소나기 소리는 가끔 로큰롤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무들은 각자 색다른 녹색음향으로 노래한다.

유난히도 기습 폭우가 많았던 올해 여름 장마가 물러가면서 폭염이 이어지는 무더운 날씨를 그래도 사람이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청량한 빗줄기가 참으로 고맙다. 소나무와 참나무 등걸도 비에 젖어 잔뜩 물을 머금고 검은 빛을 띠고 있다. 우리 집 강아지 덕수와 장미도 비를 피해 집으로 숨어든다. 서서히 비구름이 물러가면서 하아얀 비안개가 산허리를 감싸면서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자연이 만들어낸 천국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가 소나기에 물길이 바뀌어 길 위로 도랑이 생긴다. 우산을 쓰고 나가 급하게 물길을 터주지만, 이미 땅의 지도는 변해있었다. 흙탕물이 산 위에서 아래로 쏜살같이 내달린다. 아까운 자갈들도 함께…….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 산골과 시골은 어떤 모습일까? 유행가 가사처럼 빈대떡이나 부쳐 먹는 모습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청하는 모습도 보일 것이다. 그도 아니면 스마트폰을 통해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를 것이므로 어떤 모습이 좋은지는 각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르면 된다. 조용히 책을 읽는 모습, 명상을 하는 모습,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런 날에도 고추를 따는 모습도 있고, 논에서 물꼬를 보는 모습도 있고, 반면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모습도 보인다.

나무 데크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도 자세히 보다 보면 꽤나 아름답다. 나뭇잎에도 풀잎에도 빗방울이 부드럽게 속삭인다. 괜히 비오는 날의 수채화 유행가 가사인 ‘세상사람 모두다 도화지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라고 웅얼거려 본다. 소나기가 지난 뒤의 하늘은 눈이 부시게 파랗다. 나무 등걸에 붙어 처량하게 울어대는 매미도 따지고 보면 신나게 지껄이고 있는 것이리라.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게 행복하다는 표현이지 않을까?

밭에서 갓 캐온 강원도 감자를 삶아 놓으니 참으로 먹음직스럽다. 거기에 더해 강원도 옥수수를 곁들이니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시골에서만의 혜택은 바로 수확해서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푸드마일리지(food mileage)라는 용어는 먹을거리가 생산자 손을 떠나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 거리를 뜻하는데, 시골은 이 푸드 마일리지가 0이기 때문에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직접 키워서 직접 수확하고,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시골사람들의 조금만 사치이기도 하다. 

올해는 유난히도 장마가 길고, 더위도 길게 진행된다. 한줄기 소나기는 더위를 식히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극한 폭우는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인명피해까지 발생시키는 무서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무더위로 인한 온열질환 환자도 예년에 비해 많이 늘어난 모양이다. 연일 재난문자가 도착한다. 한낮에는 밭에 나가지 말고 휴식을 취하라고. 그런데 농사짓는 입장에서는 제때 일을 하지 않으면 몽땅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리 더워도 밭에 나가서 일을 할 수밖에 없으니 안타가운 노릇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졸시 한수 지어본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흘러가네.
검은 도화지에 파란 물감을 풀더니
하얀 물감을 덧칠한다.

녹색 나무 사이로 햇빛이 비추고
노란 달맞이꽃이 그 사이에서 하늘거리네
이름 모를 하얀 꽃도 따라서 흔들린다


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구건서 님은 공인노무사로 고려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시니어벤처협회 회장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중앙경제HR교육원 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평창 금당계곡에서 홉시언스족을 위한 심심림프로젝트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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