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라이센스뉴스=구건서의 산중필담(27) | TV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숨어있는 고수와 아마추어들이 주로 노래와 춤, 특기를 발휘하는 무대인데, 찬반양론이 팽팽하지만 이를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치열한 경쟁이 삶의 모든 것은 아니며,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면서 사는 것이 더 멋진 인생임은 틀림없다. 오디션프로에 나와서 경쟁하는 젊은 친구들도 연습하는 기간 동안은 서로 돕고 친구로 지낸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서 누구는 떨어지고, 누구는 합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를 떨어뜨려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비정한 현실을 겪게 된다. 수천 명의 경쟁자 중에서 최종 결선에 오르고, 결선에 오른 사람끼리 또 최고를 가리는 경쟁시스템에서 상대보다 하나라도 잘하지 않으면 절대 뽑히지 않는다. 

실력도 실력이고 삶이라는 스토리도 하나의 고려항목이다. TV를 보는 사람들이 감동을 느껴야 프로가 살고, 프로가 살아야 광고가 들어오고, 그 프로그램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대단할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연습에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오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오디션이기도 하다. 절박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무대를 장식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독설을 퍼붓는다. 오디션에서 떨어진 친구들은 서러워서 울고, 오디션에 합격한 사람들은 기뻐서 우는 모습을 많이 본다. 가슴이 멍하니 아플 때도 있고, 멋있는 무대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그중에서도 오래 전에 본 오디션프로그램에서의 반전은 두고두고 내 뇌리에 남아있다. 어릴 때부터 노래와 춤으로 유명했던 26살의 젊은(?) 심사위원의 한마디가 가슴을 후려친다. 패자부활전까지 거쳤음에도 한 장의 카드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사장될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억지로 뽑는 것 보다는 캐스팅을 포기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심사위원의 판단이었다. 마무리 멘트가 나가고 제작 스태프들이 무대를 정리하려는 순간, 한 소녀가 손을 들었다. 열일곱 살의 한 소녀가 무대 뒤에서 손을 들고 무슨 말을 한다. 주눅 든 얼굴로 심사위원이 든 카드 한 장을 쭈뼛쭈뼛 가리켰다. “저 카드 때문에,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노래 한 번 하고… 다시 한 번 생각을….” 더듬거리는 말이지만, 장내는 순간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해서 기회를 잡은 그 소녀는 혼신을 다해 혼자 반주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시작된 노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라 그런지 더욱 절박했고 음정과 박자 등이 흔들렸다. 노래라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물러나기는 너무 억울하다는 눈물어린 호소였다. 심사위원들도 표정이 별로여서 나는 안됐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채널을 돌리려했다. 그런데 젊은 심사위원이 상황을 역전시켰다. 그 소녀에게 캐스팅카드를 기쁜 마음으로 준 것이다.

젊은 심사위원은 이렇게 평을 했다.

“모든 사람이 그냥 내려가려는 순간 손들고 나와 노래를 했다는 게, 그런 정신이 필요한 거예요. 서바이벌이잖아요. 지금 손들고 나온 이 순간을 잊지 마세요. 그런 의미로 다음 경연에 참가하는 카드를 드리겠습니다.”

어찌 보면 심사위원의 결정은 오직 실력만으로 평가한다는 서바이벌의 취지에 맞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긴 아직 아마추어의 무대. 재능 못지않게 꼭 꿈을 이루고 말겠다는 절박함이 중요하다. 젊은 심사위원은 보아였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생면부지 일본 땅에서 무서운 집념으로 대스타가 된 그녀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외운 한자가 ‘루(淚, 눈물)’였다고 한다. 그러나 힘들 때마다 주저앉았다면, 26세 나이에 이미 대가의 풍모를 갖춘 그녀를 우리는 지금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절박하게 무언가를 찾지 않으면 99도에서 끝난다. 물이 수증기가 되는 온도는 100도에 달해야 한다. 그런데 99도까지는 잘 올려놓지만, 마지막 1도에서 포기하기 때문에 수증기를 변하지 못한다. 그 마지막 1도가 젊은 친구들에게는 절박함이다. 꼭 이루어내야 할 과제라면 목숨을 걸만큼 절박하게 원하고 절박하게 덤벼야 한다.

필자도 그 절박함 때문에 발에 동상이 걸린 줄도 모르고 한 겨울 추운 사무실에서 14일만에 노동법해설서를 펴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이 발목을 잡고 있을 때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1997년 노동법이 개정된 후 최초로 해설서를 낸다는 목표로 작업을 시작했다. 개정법과 관련된 자료를 구하고, 책을 오려붙이고, 타이프를 치는 등 혼자 사무실에서 외롭게 책을 편집해 나갔다. 1월의 추운 겨울이라 석유난로를 켰지만 책상 밑은 냉방 그대로였다. 손을 호호 불면서 날 밤을 새는 등 책 작업을 끝내고 나니 내 발은 퉁퉁 부어있었고, 심한 동상에 걸린 상태였다. 그런데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으니 얼마나 절박했으면 발에 동상이 걸린 것도 몰랐겠는가?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겨우 국회에서 변경된 법조문을 입수할 때 700쪽의 개정법 해설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가장 먼저 책을 낸 덕분에 중학교 중퇴의 별 볼일 없는 학력임에도 최고의 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절박함은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바꿀 수 있다. 무슨 일이 잘 안될 때 과연 나는 얼마나 절박한지 점검해보기 바란다. 절박함이 클수록 인생이라는 여행의 아름다움을 더 느끼게 될 것이다.

마지막에 한 장의 캐스팅 카드를 받은 소녀는 다음 번 경연에서 쟁쟁한 친구들을 제치고 생방송에 진출했다. 물론 생방송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는 그 소녀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절박함은 인생의 큰 스승이다.


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구건서 님은 공인노무사로 고려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시니어벤처협회 회장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중앙경제HR교육원 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평창 금당계곡에서 홉시언스족을 위한 심심림프로젝트 진행 중에 있다.

본 기사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볼 수 있습니다.
번역을 원한다면 해당 국가 국기 이모티콘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This news is available in English, Japanese, Chinese and Korean.
For translation please click on the national flag emoticon.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라이센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