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라이센스뉴스=구건서의 산중필담(16) | 염치(廉恥)의 사전적 의미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치거나 할 때 가지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뜻한다. 염(廉)은 참는 마음이고 치(恥)는 부끄러운 마음이다. 흔히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할 때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염치도 없는 놈’과 같이 쓰곤 한다. 혹은 ‘염치없지만’ ‘염치불고하고’와 같이 상대에게 정중하게 부탁할 때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염치가 없는 상태를  몰염치 혹은 파렴치라고 한다. 사람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염치가 있다는 점이다. 염치는 자신을 돌아보는 힘이고, 더 나아가 반성과 성찰을 통한 자기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염치가 없다는 것은 인간적이지 않고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예의 바른 반려동물만도 못한 인간이 많다. 인간의 마음 안에 미안함, 순수함, 예의, 배려, 양심 등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염치가 없는 인간이 늘어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의제이기도 하다. 금전만능주의, 성적지상주의가 가져온 반작용일 수도 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면서 “너만 1등해라, 너만 잘 살면 된다. 너만 좋은 대학가면 된다. 너만 좋은 직장 들어가면 된다. 너만 부자 되면 된다.”고 세뇌시켰기 때문이다. 즉,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태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만족하는 삶, 법과 질서를 지키려는 마음보다는 나만 잘되면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염치라는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도 없게 된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학식이 높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동물과 무엇이 다르랴. 가장 염치가 없는 사람들은 아마도 권력을 휘두르는 잘난 척(?)하는 정치인들과 돈의 힘을 남용하는 졸부들이 아닐까.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안하무인,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노인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나이 많은 게 무슨 벼슬인양 젊은이들을 하대하거나, 돈 좀 있다고 다른 사람들을 깔보는 태도가 문제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장 지켜야할 덕목이 바로 염치이기 때문이다. 수줍음과 미안함, 체면과 부끄러움을 간직한 노년이 조금 더 아름답다. 언젠가 술자리 옆 테이블에서 젊은이들이 신나게 떠드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등산 후 하산주를 마시다보니 지나치게 과음을 하게 되고,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는 영웅담(?)이었다. 30분 이상을 만취한 상태로 노래를 불렀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제지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한창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기 때문에 그냥 애교로 봐주지 않았을까. 만약 나이 든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했다면 아마도 경찰이 출동하는 등 시끄러웠을 것이다.

필자는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지공도사’이지만, 아직까지는 요금을 다 내고 다닌다. 운 좋게도 가끔 강의요청이 들어와 강의를 하면 용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노약자석 근처에는 가지 않는 버릇이 있다. 노약자석 자리를 두고 노인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가끔 본 이후로 생긴 버릇이다. 조금 젊은 노인이 자리에 앉아있는데 조금 더 늙은 노인이 자리 양보를 받으려고 나이를 물어보고, 삿대질을 하면서 ‘젊은 놈이 싸가지가 없다’고 면박을 주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심지어 몸이 좋지 않거나, 진짜 힘이 들어서 비어있는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이에게 큰 소리로 창피를 주기도 한다.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경로석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노약자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이다.

젊은이라고 하더라도 몸이 아플 수 있고, 지친 일상에 힘이 들 수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놀기만 하는 노인보다는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는 젊은이를 존중하는 문화가 더 바람직하다. 노인이라고 유세떨지 말고 젊은이들을 측은지심으로 대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나이 들어 갈수록 염치라는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자.


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구건서 님은 공인노무사로 고려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시니어벤처협회 회장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중앙경제HR교육원 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평창 금당계곡에서 홉시언스족을 위한 심심림프로젝트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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