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아티스트 겸 서양화가 장소영 작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겸 서양화가 장소영 작가

미술작품은 작가의 감성을 나타내는 표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정치를 가장 잘 반영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작가들은 예술가인 동시에 사회를 객관적으로 살피며 대변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베르나르 뷔페라는 화가의 작품을 통해서 우린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알 수가 있다. 구상회화의 왕자라 호평받았던 프랑스의 천재 화가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7.10 ~ 1999.10.4.)의 초창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생기가 없고, 인물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다.

그도 그럴 것이 베르나르 뷔페는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모든 것이 파괴된 참혹한 전쟁폐허 공포 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삭막하고 쓸쓸한 풍경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깡마르게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의 고독과 좌절한 모습을 그려냈다.

그가 그림을 그릴 당시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낡은 침대 시트를 찢어 남이 쓰다남은 물감으로 겨우겨우 그림을 그렸으며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최소한의 물감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지치고 외로운 감성을 그려냈다. 

Autoportrait au chevalet, 이젤과 초상화, 1948<br>
Autoportrait au chevalet, 이젤과 초상화, 1948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물감들 마저도 그리고 난 뒤 칼로 긁어내 황량한 느낌을 표현했고 자신의 이러한 작품들로 전쟁으로 상실감에 빠진 프랑스 시민들을 위로했다.

베르나르 뷔페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카소 역시 그림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었다. 피카소가 1937년에 그린 ‘게르니카’라는 작품은 불길에 휩쌓인 집과 죽은 아이들, 잘린 동물들의 머리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알 수가 있다. 

1937년 에스파냐 정부는 피카소에게 파리 만국 박람회 에스파냐관에 걸릴 그림을 의뢰했다. 하지만 그해 5월 ‘스 스와르’지가 에스파냐 내전 중 일어난 학살사진들을 공개했고 그 사진에는 4월 26일 독일 폭격기들이 게르니카라는 작은 마을을 처참히 공격하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피카소는 이 사진을 보고 곧바로 스케치를 시작했고 마침내 6월 4일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그림 속에서 피를 연상하는 붉은색이나, 전쟁을 상징하는 전투기, 폭탄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흑백톤의 그림 속에서 우린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이렇듯 우리는 미술작품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느낄 수가 있다.

베르나르 뷔페, 접시 위 계란 그리고 남자, 1947, 캔버스에 유채, 96x90 cm
베르나르 뷔페, 접시 위 계란 그리고 남자, 1947, 캔버스에 유채, 96x90 cm

피카소와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처럼, 한 작품이 그 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도 인정받는다는 건, 작품 속에 그려진 사건이나 배경을 수긍한다는 뜻이다.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단순히 예술작품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사회를 어떻게 살아갈 것 인지, 어떤 사회를 살아갈 것인지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 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옛말에 ‘以古爲鏡 以史爲鑒’(이고위경 이사위감)이라는 말이 있다. 옛일을 거울삼고 역사를 거울삼는다면 점점 각박하게 변해가는 21세기를 좀 더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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