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라이센스뉴스=구건서의 산중필담(8) |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든 규칙을 정하게 마련이다. 동창회, 동호회, 아파트, 마을을 가리지 않고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 되면 스스로 지킬 규칙이든, 준칙이든, 룰(rule)이든 만들어내는 것이다. 설령 문서화된 것이 아니라도 관행이나 관습도 지켜야 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도시에서는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아파트입주자회의’라는 단체가 존재하고 이 단체에서 자치규약을 만들어 입주민들에게 지키도록 요구한다.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일정금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아파트마다 부녀회, 노인회 등이 조직되어 쓰레기분리수거나 방범활동을 주도적으로 한다. 이런 모임에 관심이 없는 입주민들도 있지만, 관리비를 비롯해서 돈을 내야하는 일이 생기면 이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시골도 마찬가지로 마을마다 주민이 지켜야 할 규약이나 회칙을 정해놓고 이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마을영농회, 부녀회, 노인회 등 다양한 모임이 있어서 자체적으로 회비를 걷기도 하고 공동으로 마을 행사를 주최하기도 한다.

특히 도시에서 시골마을로 귀농귀촌 또는 귀산을 하는 경우 마을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걷는 돈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편 가르기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마을발전기금을 내지 않아 싸움을 했다는 이야기가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얼마 전 뉴스에 따르면 경기도 양평군의 한 마을에서 이장 투표하려는 신규 전입자는 마을발전기금으로 250만원을 내야 정회원으로 인정받고 이장 선거 투표권도 가질 수 있다는 마을 정관 때문에 기득권 다툼이 벌어진다는 보도가 있었다.

마을기금은 말 그대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모아 관리하는 기금이다. 마을에서는 이 기금을 활용해 마을 도로나 상수도 등 공동시설을 보수하고, 복지사업에 쓰기도 한다. 때로는 마을 자체에서 수익사업을 해서 기금을 늘리기도 한다. 때문에 외부에서 새로 전입하는 세대가 있는 경우 기존의 주민들이 사업을 꾸려온 부분이나 앞으로 마을의 공동시설을 이용하게 되는 부분, 그리고 수익사업에 참여할 권리에 대한 금전적인 기여를 마을규약에 따라 마을발전기금이라는 형태로 요청받게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충분한 설명 없이 무조건 기금을 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기금을 마을 임원 일부가 불투명하게 관리하는 경우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마을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공동시설도 이용하지 않으며, 수익사업에도 참가하지 않는다면 마을기금을 내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마을기금은 말 그대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모아 관리하는 기금이다. 마을에서는 이 기금을 활용해 마을 도로나 상수도 등 공동시설을 보수하고, 복지사업에 쓰기도 한다.[사진=구건서 작가]
마을기금은 말 그대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모아 관리하는 기금이다. 마을에서는 이 기금을 활용해 마을 도로나 상수도 등 공동시설을 보수하고, 복지사업에 쓰기도 한다.[사진=구건서 작가]

마을기금과 달리 매년 마을회비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동네마다 금액을 다를 수 있고, 아예 마을회비가 없는 경우도 있다. 마을 일을 처리하는 이장이나 임원들의 일처리는 정의롭고 공정해야 한다. 특히 마을발전기금을 사용하는 경우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고, 수입과 지출에 대한 장부정리가 정확하고, 회계장부는 공개해야 한다. 

필자가 사는 마을도 전입할 때 마을발전기금 30만원을 받고, 매년 8만원씩의 마을회비를 걷어서 반상회 때 밥값으로 쓰거나 전체 행사 때 지출한다. 물론 마을상수도 사용료는 매년 별도로 내야 한다. 내야할 돈이라면 기분 좋게 내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은 항상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내 편도 있는가 하면 반대편도 당연히 존재하다.

이러한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일처리다. 더 나아가서 불합리하고 시대에 맞지 않은 마을규약이나 관행은 과감하게 정비해서 불필요한 분쟁의 발생을 예방하고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만들어갈 의무가 마을 임원들에게 있다. 만약 마을발전기금이나 마을회비를 내지 않을 경우, 마을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거나 속칭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시골 마을에 가면 그 동네의 법(규약, 회칙, 관행)을 따라야 한다. 마을기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는 이장에게 미리 물어보면 된다. 마을기금을 내기 싫으면 그 동네로 전입하지 않으면 된다. 도시에서도 아파트입주자회의에서 규약을 정하고 이를 지키도록 강제하듯 시골 마을도 마찬가지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귀농귀촌이나 귀산은 어찌보면 ‘사회적 이민’의 하나이다. 이민을 할 때 그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건 필수이듯, 시골의 생활방식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밭 한 뙈기에도 그 지역의 내력이 담겨있다. 대를 이어서 만들어둔 규범을 무시하면 적응하기 어렵다.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지역에 융화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훨씬 많다. 마을 사람들과 가능한 많이 대화하며 생활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시골살이에 동네법도 법이니 가능하면 지키도록 하자.


구건서 노무사(심심림 대표)
구건서 님은 공인노무사로 고려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시니어벤처협회 회장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중앙경제HR교육원 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평창 금당계곡에서 홉시언스족을 위한 심심림프로젝트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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