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생활도 나름 재미있나이다

필자가 사는 평창군 대화면 개수리 봉황마을에는 덕수산과 장미산이 동네를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산골이다. [사진=구건서 작가]
필자가 사는 평창군 대화면 개수리 봉황마을에는 덕수산과 장미산이 동네를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산골이다. [사진=구건서 작가]

라이센스뉴스 = 구건서의 산중필담(山中筆談)②|“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어릴 때 많이 불러봤던 동요 가사 중 하나를 평창의 깊은 산중에서 웅얼거려본다. 노랫말에 나오는 토끼도, 노루도 보이지 않지만 대신 나와 동행하는 ‘덕수와 장미’가 새하얀 눈밭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닌다. 

필자가 사는 평창군 대화면 개수리 봉황마을에는 덕수산과 장미산이 동네를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산골이다. 덕수산과 장미산에서 이름을 따온 덕수와 장미는 필자와 함께 산중생활을 즐기는(?) 진돗개를 말한다.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두툼한 옷과 모자를 쓰고 오두막을 나선다. ‘영하 25도’의 매서운 추위가 콧등을 새빨갛게 물들인다. 오늘은 특히 휘영청 밝은 달이 새벽바람을 잠재우고 있어 더욱 조용하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 산속에서 뭘 하는가?” “무슨 재미로 사는가?” “심심하지 않은가?” “불편하지 않은가?” 외롭지 않은가?…….

질문 한편에는 산중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녹아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런 여유로운 삶이 참 좋다. 

질문에 대한 답은 짧고 간결하다. “그냥 잘 놀고 있다”고 웃으며 답한다. 하지만, 그냥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 잘 놀고, 잘 자고, 잘 먹고, 공부 잘하고, 잘 쉬고 있다. 가끔은 강의와 모임 덕분에 서울 나들이도 한다. 또 가끔은 좋은 술친구가 찾아와 한잔 술에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심심림(心心林)프로젝트를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심심림에는 바람소리길을 비롯해서 물소리길, 새소리길, 고라니길 등 다양한 산책길이 있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코스를 번갈아가며 걸을 수 있다. [사진=구건서 작가]
심심림에는 바람소리길을 비롯해서 물소리길, 새소리길, 고라니길 등 다양한 산책길이 있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코스를 번갈아가며 걸을 수 있다. [사진=구건서 작가]

어느 길로 산책을 할까 망설이다 바람소리길을 선택했다. 이곳 심심림에는 바람소리길을 비롯해서 물소리길, 새소리길, 고라니길 등 다양한 산책길이 있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코스를 번갈아가며 걸을 수 있다. 

바람소리길은 금당계곡 언덕 위에서 장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라서 붙인 이름이다. 금오도의 비렁길과 마찬가지로 금당계곡을 내려다보면서 금당계곡을 따라 걷는 아름다운 길이다. 눈 덮인 산책로에는 이미 고라니와 멧돼지가 먼저 다녀간 흔적이 남아있다. 한두 녀석이 아니라 무리를 지어 이동한 것 같다.

그 흔적을 덕수와 장미가 코를 킁킁거리며 쫓는다. 뽀드득뽀드득 흰 눈을 밟는 소리가 고요한 대지를 깨운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 장미산장에 다다른다. 장미산장은 필자가 손님에게 빌려주는 작고 아담한 펜션이다. 숲속에 있는 하얀 전원주택인데 지붕까지 하얀 눈이 덮여있으니 동화책 속 풍경화가 따로 없다. 집을 둘러보고 다시 내 오두막으로 향한다.

먼동이 트면서 대지가 차츰 밝아온다. 매서운 한파에 코끝이 시리고 눈물도 찔끔 나오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가 모든 것을 덮어준다. 따뜻한 차 한 잔과 사과 한입에 행복을 느낀다. 덕수와 장미도 사과 한조각의 포상에 싱글벙글이다. 

간단한 아침을 마치고 평창역으로 향한다. 서울에서 강의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 KTX 기차를 타고 가서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 강의를 마치고, 저녁 KTX 기차를 타면 8시에는 오두막에 도착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시간보다 약간 더 소요되지만, 이런 산중 생활이 필자는 더 좋다. 가끔 서울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도 이렇게 산속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구건서 님은 공인노무사로 고려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시니어벤처협회 회장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중앙경제HR교육원 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평창 금당계곡에서 홉시언스족을 위한 심심림프로젝트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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