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칼럼니스트
이유진 칼럼니스트

유학은 외국에 머물면서 공부하는 것을 뜻한다. 세계화 시대의 의미를 확립한 1970년대부터 유학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났고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오늘날 유학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목적과 예산에 맞춰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유학길에 오르면 만사형통일까?

나는 현재 4년째 프랑스 유학 생활 중에 있는 학생이다. 4년 전, 안락했던 나의 한국 생활을 접고 나를 알지 못하는 나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와 27살에 다시 한 살이 되었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짜 혼자가 되었을 때 마주쳤던 모든 어려움과 해방감, 외로움, 그리움 등이 진짜 ‘나’를 알아가게 되는 소중한 배움의 과정이 될 것이라고 나는 알았을까?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나처럼 혼자 살아 본 적 없는 젊은이들이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해외 대학에 진학해 오는 학생들이나, 교환학생으로 6개월 혹은 1년 동안 짧게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취업을 했으나 더 공부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이들이나 내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빛 좋은 개살구나 고진감래 등의 속담의 개념을 제대로 알고 유학을 선택했겠는가?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떠나 홀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살면서, 밥하고 빨래하며 집 청소와 공부를 하면서 혼자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군다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밥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점심을 같이 할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찾기 일쑤이다. 

그런 우리가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서 회사 근처나 학교 근처에서 혼자 먹을 각오가 되어 있을까? 잠깐의 외로움을 다스릴 수 있고 혼자 있는 것이 두렵지만 그것을 이겨 낼 수 있어서 자신과의 시간을 충분히 보낼 줄 알며, 대부분의 삶의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우리와는 다른 외국에서 새로운 것들을 지혜로운 비판과 정당한 동의로 배우며 받아들일 수 있는가.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 원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부터, 본인이 하고자 하는 공부와 자신을 돌보는 일까지 충분하게 해 낼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고자 했다면, 혹은 다행스럽게도 이미 그런 사람이라면, 나는 유학을 이런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 전에는 깨닫지 못하였거나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자신이 살고자 했던 방향으로 가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한 번 있는 본인 인생에서 유학생할은 충분히 도움이 되고도 남는다.

유학생활은 자신을 잘 알지 못하거나 자신을 믿지 못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을 할 수 없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있는데, 정작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모른다면, 스스로와의 대화가 없다면,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면, 참으로 쉽게 다양하고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는 유혹,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는 유혹, 시야를 다양하게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유혹,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유혹 등, 나는 유학생활 중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삶을 직, 간접 경험했다.

그들 중 몇몇 한국인들은 말 안 통하는 외국, 혹은 현지 사람들을 만날 바에야 말은 통하지만 자신과 성향이 맞지 않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스트레스 받다가 결국 어학과정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자그마한 부탁에서 큰 부탁까지 받아주고 도와주면 다음부턴 말 안 해도 내가 알아서 도움을 주길 당연한 듯 바라는 사람들, 현실은 단칸방 신세인데 돈을 모아 세일 기간에 산 명품덕으로 SNS에서 혹은 집 밖으로 나와야지 멋있는 사람들, 물어보지도 않은 부모님의 거주지가 어제는 독일이라더니 오늘은 칠레인 홍길동의 아들,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외국 친구들만 만나려는 사람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현지인들까지 우리가 자고 나란 좁은 한국에서 만나기 힘든 다양한 사고방식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옆에서 지탱해 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외국에서 언어마저 달라 제대로 의사 표현하기 힘든 타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지 않으면 절대로 부모의 그늘 밖에서 성공할 수 없다. 세상은 온갖 유혹이 가득하며, 모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정해 놓은 한계가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대들에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은 언뜻 보면 예쁜 스무 살, 스물한 살이지만 아직 중, 고등학생 때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2차 성장기 때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를 ‘수능은 무엇인가’로 대체하며 ‘나’를 배제하였고 가장 중요한 나와의 관계,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a² + b² = c²  로 대체하였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20대 초반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들 중 일부는 아직도 ‘나’를 찾지 못한 채 살다가 40, 50대에 크게 한 번 충격이 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체제가 잘못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맞이했던 우리의 역사와 함께 만든 우리의 문화이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것, 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 할 수 있으니, 그 나중이 될 때까지 우리는 옆에 있는 가족, 친구와의 관계보다는 삼각형 세 변의 관계에 대해 집중을 해야 하고, 현재 신나고 즐거운 노래를 듣기 보다는 1000년이 지난 고려 가사를 분석하고 외워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겉으로는 성장해 온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2차 성장을 마치지도 못한 채로 성인이 되어서 알 턱이 없는 자유를 ‘20살’+’술’+’이성’= ‘자유’라는 이상한 공식을 세우며 세상에서 가장 긴 2차 성장기를 보내게 된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이해하지 못한 채 책임 없는 미성년자로 대부분의 20대를 보내게 된다.

나는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나 일을 할 때도 부모님이 깨워주기 일쑤였다. 나는 이상하게도 알람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 유학 와서 스스로에게 깜짝 놀란 것이 프랑스에 온 지 3일째 되던 날, 월요일 아침, 깨워주는 사람 없이 혼자 알람 소리를 들은 것도 놀라운데 ‘5분만’이라는 단어조차 생각하지 않은 채, 일어나 준비해서 학교를 갔던 어학원 수업 첫날이었다. 시간이 점차 지나자 학교 가기 전 여유로운 커피 한 잔과 바게트로 스스로에게 아침의 여유를 내어 주었고, 이제는 내가 원하는 시간을 나에게 온전히 바칠 수 있게 되었다. 

돼지우리 같다며 항상 방 치우라는 소리를 들었던 내가, 한국에 있는 나의 방보다 훨씬 큰 41제곱미터의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아침 여유로운 커피 한 잔 후 집 청소하는 것이 나의 작은 기쁨이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 또한 한국의 대학교와 다르게 너무나 자유롭다. 

너무나 자유롭기에 아무도 나를 향해 해야 할 것을 정해주지 않는다. 그룹 작업을 할 때에도 아무도 각자 할 일을 정해주지 않는다. 과제 또한 자유롭다. 그래서 교수들이나 관련 인턴쉽 등 스스로 찾아다니지 않거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바로 잘리거나 유급을 당하기 쉽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어떤 자유를 만끽하며 살 것인가,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모든 삶의 답은 그 본인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적어도 한 번쯤 자기 자신을 마주하여 깊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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