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중반에 터득, 노숙자 자립 센터 설립이 꿈

 

수많은 절망과 기쁨이 묻어있는 작업대
수많은 절망과 기쁨이 묻어있는 강샘 칼럼니스트의 스마트폰 수리 작업대 (사진제공=강샘 칼럼니스트)

 

고등학교 시절, 딸아이는 걸핏하면 스마트폰 액정을 깨 먹었다. 청소년기에는 성장 과정에 있기 때문에 뼈가 고정이 되지 않아 접시를 깨거나 섬세한 작업에 완성도가 높지 않다고 한다. 그걸 감안해서 폰 케이스를 사 주었는데도 용케도 전화 화면은 잘도 깨졌다.

그때마다 절망하는 딸의 표정은 딸 바보 아빠의 마음을 몹시도 아프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화 고치는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한 번 수리 전문점에 맡기면 반 달치 용돈이 후딱 날아가 버리고 나는 것이다.

딸의 문제를 많이 해결해 온 해결사 아빠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두 번 다시는 딸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전화 수리공이 돼야 되겠다고 크게 마음먹었다.

작은 연장들을 준비했다. 자료들을 준비해 열렬한 공부, 열공이 아니라 맹렬한 공부 맹공을 했다. 이베이에서 부서진 전화들을 구입해 배운 것들을 수도 없이 연습에 연습을 더 했다.

온라인으로 볼 때는 생각처럼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빠른 화면으로 돌리기 때문에 순식간에 보기 흉한 전화기가 말끔한 전화기로 변해 있었다.

내가 해도 그렇게 될 거라는 자신감은 착각일 뿐이었다. 아이들 손바닥 만 한 물건에 그렇게 많은 복병이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화기는 참 냉정했다 털끝만큼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전화기 뚜껑을 열 때 약간의 각도를 더 넓게 벌였다고 전화기는 그냥 죽어 버렸다. 한 세트 안에 있는 나사들이 다 똑같은 줄 알고 한 곳에 모아 두었다가 다시 조립할 때 맞지를 않아서 살펴보니 사이즈들이 달라서 찾아서 맞추는데 무척 많은 시간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웬만큼 좋지 않은 시력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나사들을 제자리에 맞춰서 조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터리 커버 나사가 풀릴 때는 잘 풀렸는데 조일 때는 아무리 힘주어 박아도 헛돌기만 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 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처음에 단순하게 시작한 전화 고치는 일은 장애물이 발생하면서 나이와 함께 희미해져 가던 승부욕을 다시 불러들였다. 젊은 시절 승부욕은 장난이 아니었다.

반드시 정복 시키고 말겠다는 욕심은 가방에 도구와 부서진 전화기들을 쑤셔 넣고 출근해 쉬는 시간마다 펼쳐 놓고 작업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적당히 자신감이 붙었을 때 교회 고등학생의 부서진 전화기를 고쳐 주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한 순서를 따라 했어야 하는데 앞뒤가 하나 바뀌면서 전화기는 죽어 버렸다.

심폐소생술을 시도 하는 마음으로 밤을 새워 노력했지만 결국 전화기는 죽고 말았다. 전화기 자체야 변상 하면 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사진이며 전화번호들은 모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착한 고등학생은 적잖은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 말은 원망하는 것보다 몇 배나 깊게 내 마음에 상처를 내어 꽤 긴 시간을 아파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전화 고치는 일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 여기에 집착하고 있는가’.

포기하려고 한참을 손을 떼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속에서 스멀스멀 다시 욕심이 일어 온다. 나는 어느새 전화 고치는 일에 중독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다시 작은 연장을 들었을 때 미운 정 고운 정 다들은 연인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들떠 있었다. 재밌었다. 이 일과 내가 꽤나 맞는 모양이다.

이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설령 어쩔 수 없이 부서지는 전화기가 나와도 ‘이건 네 운명이야’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길 여유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까 수리 중에 생기는 긴장감 같은 것들도 사라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딸의 전화기를 고쳐 주려고 시작했는데 이제 뼈가 자라 굳은 딸아이는 그 후로 한 번도 전화기를 깨뜨린 적이 없다.

배운 기술을 버리는 것이 아까워 부업을 시작했다. 고객들의 전화도 수리해주고 온라인 상에서 부서진 전화를 구입해 수리를 한 다음에 높은 가격에 팔아 이윤을 조금씩 남겼다. 참 재밌는 부업이었다.

망가진 전화기를 새전화로 만들었을 때의 그 기쁨, 이제 제대로 누리고 있다. 행복해 하는 고객을 보는 기쁨 또한 여간 큰 것이 아니다.

나 혼자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관심 있는 지인들에게 전화 고치는 법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 효율적인 방법을 터득해 가르치는 만큼 학생들은 훨씬 빠르게 익혀 갔다.

꿈이 있다. 앞으로 노숙자들에게 이 기술을 시도해 자립의 틀을 만들어 주고 싶다. 내 꿈을 sns와 카톡 등을 통해 주변에 알리자 꽤 많은 분들이 부서지거나 안 쓰는 전화기를 기부 해 주겠다고 하고 재정 지원도 하겠다고 전에 왔다.

적지 않은 나이가 마음을 초조하게 한다. 꿈을 이루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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