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회장 취임..‘한국의 삼성’ → ‘세계의 삼성’ 변모시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그룹)

라이센스뉴스 = 정재혁 기자 | 한국 재계의 거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향년 78세 나이로 별세했다.

삼성 측은 이날 이 회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했다.

고인은 지난 2014년 5월 10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 있던 중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태어나 1965년에 일본 와세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66년엔 조지워싱턴대학교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0년에는 서울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2005년 고려대학교 명예철학박사, 가장 최근은 2010년엔 와세다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를 받았다.

1966년 동양방송 입사를 시작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에 오르며 경영자 수업에 본격 돌입했다. 1979년에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1987년 선친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이건희 회장의 취임 이후 삼성그룹은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성과만 봐도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고,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도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 증가했다.

이 회장은 1993년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경영 전 부문에 걸쳐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했다. 이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에 인간미와 도덕성,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삼성 전 임직원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보고, 양을 중시하던 기존 경영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 방향을 선회했다.

실제로 이 회장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 타파를 위해 공채 학력 제한을 폐지했다. 삼성은 이 때부터 연공 서열식 인사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이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해,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양성한 글로벌 인재는 5000명이 넘는다.

‘반도체 사업’을 이건희 회장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이 회장은 1974년 볼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반도체 사업에 착수했으며,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했다.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이 회장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도 앞장섰다.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켜 조직적으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기업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해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 이 회장은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정되면서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하고,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 스포츠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특히 이 회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꾸준히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쳐,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국내 최초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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