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김성수 교수] 최근 다수의 스타트업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금융기관의 환전, 대출을 효율화하는 서비스를 개발했으나 모호한 규제에 막혀 론칭에 실패했다.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을 실제 산업이나 금융 현장에 적용하려 해도 규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토로했다.

경희대학교 김성수 교수
경희대학교 김성수 교수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이 미래 경제와 사회를 바꿀 총아로 부상했지만 현장에서는 규제 벽이 높다는 호소가 들린다. 전문가들은 “미래 먹을거리 산업인 블록체인의 발전을 위해 과감한 지원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블록체인은 소규모 데이터인 ‘블록(block)’을 P2P(peer to peer) 형태로 이뤄진 ‘체인(chain)’과 같은 데이터 환경에 기록하는 분산원장(分散元帳) 관리 기술이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인물이 2008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이듬해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됐다.

운영자가 모든 정보의 통제권을 독점하는 기존 서버·데이터베이스 기반 시스템과 달리 블록체인은 참여자들이 원장 관리에 참여할 수 있다. 일단 서로 연결된 블록은 수정·삭제하기 어려워 해킹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도 특징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탈중앙성과 효율성, 보안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도시 인프라 운영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스마트시티 구축이 대표적이다. 일부 전문가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나 민주주의가 출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 단계에서 블록체인이 가장 각광받음과 동시에 상용화된 분야는 금융산업이다. 블록체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공개한 ‘비트코인: 개인 대 개인 전자 화폐 시스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논문에서 “나는 완전히 개인 대 개인 방식이며 신뢰할 수 있는 제3자가 필요치 않은 새로운 전자 화폐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천명했다. 거래 정보를 모든 블록에 기록하고 참여자가 이를 공유하는 특성상, 블록체인은 어느 금융기관보다 높은 신뢰성과 보안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압도적인 비교우위를 지닌다.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암호화폐 시장 규모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국내 암호화폐 시가총액(거래소별 코인 가치)은 55조 2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글로벌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1조 8020억 달러(약 220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암호화폐 시장을 단순히 넘치는 유동성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규모가 무시하기에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이에 주요국 중앙은행까지 블록체인 기반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을 검토하는 중이다. CBDC는 일종의 디지털 법정 화폐로, 이미 상용화된 디지털 금융 거래와 달리 시중은행을 거쳐 유통될 필요가 없다. 결제와 송금 과정이 간편해 금융 효율성을 증진시킴과 동시에 중앙은행 처지에선 통화 정책을 펴기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은 이미 ‘디지털 위안화(e-CNY)’를 개발해 CBDC 상용화를 앞두고 시범운용을 진행하고 있다.

당초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해 CBDC에 미온적이던 미국도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민주적 가치에 부합하는 CBDC 개발을 촉진하겠다”고 밝히는 등 변화하는 기술혁신의 흐름에 따라 대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카카오 자회사 그라운드X를 사업자로 선정해 CBDC 모의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블록체인업계에선 올해 하반기 즈음이면 CBDC 도입을 위한 초기 단계의 기술적 준비가 끝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런 분위기에 발 맞춰 시중은행들도 디지털 자산 관련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1월, 신한은행은 디지털 자산 수탁업체 한국디지털자산수탁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감행했다. 같은 해 7월, 우리은행도 블록체인 기술업체와 디지털자산 수탁 합작법인 ‘디커스터디’를 설립했다.

문제는 역동적이고 혁신적으로 변화하는 금융 현장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후진적인 법과 제도에 있다. 지난해 3월 시행된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라 거래소 간 가상자산 이동 기록을 수집·보관하는 ‘트래블 룰(travel rule)’이 적용됐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권고한 일종의 ‘가상자산 실명제’라고 할 수 있다.

원화로 100만원 이상 가상자산을 이전하는 사업자는 고객 이름과 가상자산 주소를 기록해 상대 거래소에 제공해야만 한다. 투명한 자산 거래를 위해 필요한 제도지만,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산업 전반을 관장하는 포괄적 제도는 아니다. 즉, 특금법이 제정됐지만 블록체인산업 활성화보다 규제를 중점적으로 제도이며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가상자산과 관련해 ‘업권법’(業權法: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근거법) 도입이 절실하다.

새 정부도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시장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선 디지털자산 부당 거래를 근절할 ‘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 및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공약했다. 다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블록체인 등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 조예가 깊은 민간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블록체인 분야 전문가들은 적어도 부총리급 장관을 둔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산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블록체인 관련 정책을 블록체인특구지정을 통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려 했으나 중앙 부처가 제동을 거는 등 규제 장벽도 여전히 높은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금융뿐 아니라 교육·보건·산업 등 전 분야의 디지털 전환 측면에서 중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새 정부가 디지털자산과 관련해 금융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디지털자산위원회’나 규제보다 산업 진흥에 중점을 둔 ‘디지털금융산업진흥원’ 같은 전담조직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가장 적극적으로 적용된 분야는 디지털자산 시장이다. 현실 자산을 암호화폐화하고 예술 작품도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화하는 식으로 응용된다. 아쉽게도 이제까지는 정부가 이러한 블록체인과 금융의 결합을 대체로 위험한 것으로 치부해, 금지·규제 중심의 정책을 펴왔다. 블록체인 같은 신산업 분야는 금지 사항만 정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대응해야 한다. 자금세탁 같은 불법금융행위는 엄벌해 개별소비자를 보호하되, 그렇지 않은 다양한 사업과의 융복합 시도에 대해선 기업 자율성을 보장하는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정책방향성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블록체인 분야에서도 오늘날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같은 규제 균형이 섬세하게 구현돼 끝내 실현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를 통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훌륭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온전히 개방된 지금의 생태계와 비교하면 때때로 제한된 느낌을 받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규제가 제대로 접목되기만 한다면 미래의 블록체인은 작금의 인터넷망보다 저렴하고, 효과적이며, 자동화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용자는 규제의 존재를 인식하지도 못할 것이다.


◇ 김성수 교수

한양대학교 경영학 박사

現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現 세계한인무역협회 부설 국제통상전략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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