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산 꼭대기서 방주 만든 노아보단 상황이 낫다”
불가능과 싸워 이긴 최 대표가 들려주는 조선업 이야기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 (사진=성상영 기자)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 (사진=성상영 기자)

라이센스뉴스 ==성상영, 임이랑 기자 | 높이 127m, 너비 181m. 40층 아파트 높이는 족히 돼 보이는 거대한 쇠기둥이 천천히 움직였다. 상상인선박기계가 지난 2019년 12월 싱가포르 셈코프마린에 납품한 1만 5000톤급 골리앗 크레인이 시험 가동에 성공한 순간이다.

마천루가 움직이자 상상은 현실이 됐다.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골리앗 크레인을 수주할 무렵 “우리가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처럼 산 꼭대기에서 방주를 만드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며 주변의 만류를 뿌리쳤다고 한다.

잇따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 낭보로 국내 조선 경기가 다시금 호황을 맞은 가운데 상상인선박기계는 ‘그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국내 대기업에 의존하는 대신 해외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최 대표는 “세계 시장에서는 아직도 상상인선박기계들을 필요로 하는 일감들이 쌓여있다”라며 세계 최대 골리앗 크레인을 만든 뚝심으로 불안한 앞날에 대비하고 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남자’ 최영욱 대표를 전남 광양 율촌산업단지에서 만났다.


▲올해 경영성과는 어떤가?

사실 계획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성과라고 할 것도 없다. 시장 상황을 예측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주를 받더라도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가지 꼽자면 올해 1월 인도네시아 자원 공급 기업 JSK와 LNG선 개조, 6만5000톤급 LNG선 건조 계약을 맺었는데 JSK와 인도네시아 가스공사 간 입장차 때문에 본계약 체결이 계속 미뤄졌다.

해외 프로젝트라는 게 항상 변수가 존재한다.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는 데 치중하지 않는다. 단, 경영 목표는 확실하다. 다른 회사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납품 일자도 빠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상상인선박기계에 해외 프로젝트 문의가 들어오게 돼 있다.


▲상상인선박기계는 기술력으로 ‘작지만 강한 회사’로 불린다. 자랑할 만한 기술이 있다면?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빠르게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모든 설비에 자체 개발한 자동화 기술을 접목시켰다. 영업사원이 납기 18개월짜리 계약서를 가져오면 우리는 13개월 만에 생산해 낸다.

LNG선이나 연료탱크, 3만 5000톤짜리 플로팅 도크도 자동화 기술을 활용해 작업했다. 특히 고망간강 LNG 연료탱크를 제작할 때 가스가 많이 새어 나오는데 자동화 설비 기술력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가고 있다.

로봇 용접도 우리 회사가 자랑할 만한 기술이다. LNG 연료탱크를 제작할 때 로봇으로 용접을 한다. 저가형 중국 제품과 비교해 일정한 품질을 확보할 수 있고, 가격 경쟁에서 절대적인 우위가 있다.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가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성상영 기자)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가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성상영 기자)

▲경쟁사의 견제나 기술 이전 요청이 많을 것 같은데?

정말로 많다. 직원들이 타사나 경쟁사에 우리 기술을 너무 오픈한다고 아우성이다(웃음). 기술이란 원래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다. 기술을 움켜쥐고 있으면 영원히 내 것이 될 것 같고 남들이 흉내를 못 낼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자동화 기술의 경우 20년째 연구해 왔다. 지난해 로봇 자동화 기술을 상용화했다. 로봇 8대를 가져다 놨는데 연료탱크 물량이 꾸준해야지만 로봇을 가동했을 때 효율이 생긴다. 아직 시장 상황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현재 기술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보안을 잘 지켜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현재 기술에 안주하면 안 된다. 다른 기술을 빨리 찾아야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 세계 최대 규모인 1만 5000톤 골리앗 크레인 2기를 납품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상상인선박기계가 골리앗 크레인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보니 주변 회사에서 이를 좋게 보지는 않는다(웃음).

골리앗 크레인을 만들기까지 사연이 좀 있다. 싱가포르 주롱조선소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오다가 다른 일 때문에 싱가포르를 갔다. 우연히 다른 업체가 작성한 1만 5000톤 골리앗 크레인 제작 기술사양서를 보게 됐다. 읽지 않았어야 했는데(웃음).

토요일에 할 일도 없고 해서 첫 장을 읽어봤는데 느낌이 왔다. 1만 5000톤 골리앗 크레인이 물건을 들기만 하고 움직이질 못하게 돼 있었다. 크레인은 앞뒤뿐 아니라 좌우로도 움직여야 쓸모가 있다. 주롱조선소에서 1만5000톤 골리앗 크레인을 만들자고 했을 땐 생각이 좀 복잡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골리앗 크레인이 1650톤짜리다. 우리나라에서 1000톤 이상 골리앗 크레인은 대부분 핀란드 회사 손을 거친다. 핀란드 회사에서는 10개월 내에 기술 검토가 불가능하다는 답을 줬다. 주변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성경의 창세기에 보면 노아가 방주를 산꼭대기에서 만든다. 우리 회사가 그만큼 시설이 낙후된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설득했다.

계약을 따내고 24개월 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1만 5000톤 골리앗 크레인 설치를 완료했다. 높이만 127m다. 상부 구조물만 아파트 7층 높이다. 얼마나 큰지 감이 오나? 이 큰 크레인이 중량물을 들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싱가포르 프로젝트는 과거 핀란드, 독일, 중국이 주도한 골리앗 크레인 시장에서 대한민국 상상인선박기계가 떠오르게 된 계기가 됐다. 중소기업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자체 설계를 통해 제작, 시운전까지 책임졌다. 소규모 회사지만 엔지니어링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을 글로벌 시장에서 입증했다.

이후 베트남, 인도 등에서도 수주가 들어왔다. 러시아 즈베즈다와는 지지 구조물 11종을 공급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이전까지 크레인 제작에 두려움을 가진 직원들이 지금은 ‘우리가 1만 5000톤짜리도 만들었는데 1000톤짜리라고 못할 게 뭐냐’라는 반응이다.


상상인선박기계가 싱가포르 샘코프마린 주롱조선소에 납품한 1만 5000톤 골리앗 크레인 모형. (사진=성상영 기자)
상상인선박기계가 싱가포르 샘코프마린 주롱조선소에 납품한 1만 5000톤 골리앗 크레인 모형. (사진=성상영 기자)

▲조선업은 글로벌 경기변동에 유난히 민감하다. 지금은 다시 호황기라는 시각이 많다. 상상인선박기계의 전략은?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조선업에 호황기가 오면 10년은 갔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중국과 많이 경쟁하기 때문에 곧잘 비교된다. 중국과 지리적 조건, 인건비 등에서 우리나라가 절대적으로 밀린다.

그나마 LNG 연료탱크나 LNG선에 대한 기술력으로 버티는 실정이다. 벌크선 같이 건조가 쉬운 건 이미 중국이 우세하다.

문제는 LNG선도 3~5년 후에는 중국에 따라잡힐 것이다. 솔직히 지난해 죽다 살아났다. 호황일 때는 너도 나도 조선업에 뛰어들었다. 중소형 조선사가 얼마나 많았나. 계속되는 불황에 그 많은 중소형 조선소가 다 쓰러지고 없다. 협력업체도 모두 사라지고 인력도 전부 다 명예퇴직 했다.

상상인선박기계는 수소, 암모니아 연료탱크를 개발하려고 한다. 그리고 조선소를 짓고 싶어하는 나라가 많은데 컨설팅 사업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규 조선소 설계뿐만 아니라 기존 조선소의 공정 개선을 위한 자동화 설비와 시설 제작을 컨설팅하는 것이다.


▲조선소 건설을 컨설팅해준다는 게 놀랍다. 대표적으로 어떠한 나라가 있나?

러시아는 조선소가 상당히 열악하다. 우리나라 1970년대 철공소 수준이다. 우리가 아무리 천천히 만들어도 12개월이면 짓는 선박을 러시아에서는 5년 걸린다. 이러니 해외수출은 꿈도 못 꾼다.

특히 러시아는 극동지방을 제외하고 선박 운행을 못했다. 바다의 얼음을 깨면서 나아가야 해서다. 이는 채산성이 떨어진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지금은 조선소가 필요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자본과 자원이 충분하지만 조선소를 짓는 기술이 부족하다. 러시아 조선소가 현대화되면 조선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다.

이외에도 베네수엘라에 35만평 규모, 인도네시아에 10만평 규모 조선소를 컨설팅했다.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 뒤에 보이는 수출의 탑. (사진=성상영 기자)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 뒤에 보이는 수출의 탑. (사진=성상영 기자)

▲상상인선박기계는 해외 수출 비중이 압도적이다. 국내 대형 조선사에 의존하지 않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국내 물량을 한창 받을 때 대기업 협력업체로 열심히 일했지만 남은 거라고는 은행 부채였다. 대기업에 의존해 중소기업끼리 출혈 경쟁한 결과였다.

국내 시장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해외 시장에 도전했다.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대기업과 거래를 호기롭게 끊었다. 중국 청도 조선소에 무작정 찾아갔다. 여러 번 문전박대를 당했다. 회사를 폐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해당 조선소에서 100억 원에 계약을 체결하자고 연락이 왔다.

이후 인도, 방글라데시,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해외 각지에서 수주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개 조선소 부지가 오지에 있다 보니 제대로 된 숙박시설도 없어서 출장 다니는 직원들에게 미안한 건 사실이다.


▲상상인선박기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상상인선박기계는 상상인인더스트리와 상상인그룹이라는 한 지붕에 같이 있다. 처음에 유준원 상상인그룹 대표이사가 DMC(현 상상인인더스트리)를 인수한다 했을 때 내가 엄청 반대를 했다.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국내 대기업에 의존도가 높은 회사였기 때문이다. 함께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상상인선박기계와 상상인인더스트리가 한 배를 타기까지 유 회장이 엄청나게 노력했다. 이제 1년 반 정도가 지났다. 각 회사가 가진 장점이 모여 시너지를 내고 있다. 기술 개발과 제작은 상상인선박기계가, 설계는 상상인인더스트리가 분담하는 식이다. 언젠가는 한 회사로 뭉칠 것이라 본다.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가 특수 용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성상영 기자)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가 특수 용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성상영 기자)

▲유준원 대표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상상인그룹에 속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2013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수주를 받아도 RG를 발급받지 못하면 없는 사업이 된다. 정부 대책도 별로 도움이 안 됐다.

상상인이란 회사에서 투자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예전에 투자회사한테 당한 기억이 있어서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꾸준히 투자 제안이 들어왔고 결국은 유 대표를 만났다. 유 대표에게 ‘우리 회사는 이익이 많이 남는 회사도 아니고 일감이 넘치지도 않는데 투자를 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최 사장님과 직원들을 믿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상상인그룹으로 편입되면서 RG 발급 같은 걱정에서 해방됐다. 해외 영업과 기술 개발, 생산에만 전념하다 보니 회사가 안정을 찾아갔다. 지금은 활기 넘치고 경쟁력 있는 중견기업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내년 목표는?

직원들의 고정관념을 없애고 싶다. 세계 최초, 세계 최대 프로젝트를 계속 수행하려면 다른 회사가 하지 않는 사업과 신기술 개발에 꾸준히 도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없애는 게 우선인 것 같다.

몇 가지 더 꼽자면 대형 크레인들을 수주하려고 한다. 최근 조선소들이 기존 수동 크레인에서 특수 크레인으로 개조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에 발맞춰 항만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크레인 부문에 역량을 쏟을 것이다.

또한 연료탱크 생산성을 3배 정도 높일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면 영업사원들이 고생할 필요가 없다. 가격 경쟁력이 충분하고 납품이 빨리 되면서 품질도 좋아지면 알아서 수주가 들어온다. 그리고 러시아 조선소 컨설팅에도 본격적으로 나서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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