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남을 위한 삶만을 꿈꾸지 말고 자기를 위한 노력도 시도해야

시니어 한국 무용(사진제공:안연숙)
시니어 한국 무용 (사진제공=강샘 칼럼니스트)

이제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잠시 접자. 나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는데 나를 버리고 남만 생각하며 살 것인가. 어찌 보면 우리는 부모와 자식, 그리고 주변 사람들만을 위해서 살아온 삶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어느날 나는 빈껍데기로 남아있었다. 어떤 가수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고 처량하게 읊어대던 음들이 내 마음 안에서 굴러 다니기 시작한다. 우리 육십대 칠십대의 삶들이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항상 하던대로 몇 안되는 교인들이 모였다. 담백한 식사로 입을 즐겁게 하던 중에 안연숙 사모님이 말문을 꺼내셨다.

“우리 친정 어머니 갱년기를 지나시며 이제 나를 찾아야 될 때라고 하시며 과감하게 한국 무용에 뛰어드셨어요”

때로 과감은 무서운(?)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평범을 넘는 참여와 연습은 마침내 훌륭한 공연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보여 주시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그 원숙함을 진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한국 무용에 뜻을 같이하는 멤버들과 함께 만들어 내는 춤사위들에 이제 예술이라고 이름 붙여도 부끄럽지 않는 수준을 갖게 되었다. 예술에는 완성이 없다. 항상 빈곳이 있고 그게 있어 더 큰 의미를 갖는 그 예술이라는 것은 완성이 아닌 진행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진행에 몸을 싣고 나가고 더 나간다.

한인 행사에 시니어들의 춤사위들은 이제 단골이 되었다. 한인의 날, 혹은 각종 뜻있는 크고 작은 모임들에 감초가 되었다. 비록 청년 같은 민첩함이나 매끄러운 피부들은 과거로 흘러 보냈지만 그 자리를 원숙함으로 메꿀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관객들이 감동하면 일단은 성공인 것이 공연 예술인 것이다.

자아실현, 그것은 공공의 이익이나 기술 개발 등에 못지않은 평생 교육의 목표 중에 하나다. 이를 통해 수입을 만들려는 욕심이 없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해서라는 대의가 없다. 그저 척박한 삶의 그늘에 갖혀 숨못쉬던 자아에 해방을 주고 싶을 뿐이다.

“장인은……”

목사님께서 거드신다.

“당구를 시작하셔서 이제 누구도 당해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연로하신 두 분이 저리 멋지게 사실 수가 있을까?

나이에 억매이지 않고 정상을 향해 달려 가시는 두분이 마냥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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